For Thought and Contemplation
- from Cover to Cover
No one can do God's work effectively in this world until they have graduated from His "School of Patience". And patience, according to one definition, is "the ability to count down before blasting off".
감히 얘기하건데 아무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인내의 학교" 를 졸업하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정의에 의하면 인내란 폭발직전에 카운트를 할수 있는 능력입니다.
인내라는 것은 "온유" 과 깊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인내라는 필터를 가진 성질을 온유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온유란 나약한 것이 아니다.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온유란 양과 사자의 모습을 동시에 가졌다.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을 절대로 물러나지 않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쟁취하는 것이 온유다. 사자의 포효함과 야생성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것이 일정한 때의 흐름을 거쳐 마지막에 포효하는 것이 온유다.
고양이가 사자의 위용을 보고 쥐처럼 구석에 몰리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을때 죽음을 무릎쓰고 덤벼들 때가 온다. 사자가 실력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아무리 작은 쥐라도 감당할 수가 없다.
온유를 비겁함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지켜야 하는 것에는 사자처럼 포효해야 한다.
부드러워야 할때, 포효할 때를 컨트롤해주는 것이 바로 인내이다. 인내가 없으면 온유도 없다.
한국속담에 참을 인자를 마음 속으로 그리면 살인도 면한다고 한다. 그것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anger management 고 카운트다운하는 능력이다. 곧 인내이다.
Monday, February 22, 2010
Sunday, February 21, 2010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경을 허락하신 이유
Have you ever considered why it is that God allows us to go through bad days as well as good ones? Because we can learn things through adversity that we would never learn through prosperity.
당신은 왜 신이 우리로 하여금 좋은 날과 더불어 나쁜 날들을 겪도록 허락하시는지 생각해본적 있나요? 그 이유는 우리가 번영을 통해 배울수 없는 것들을 역경을 통해 배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전해지기를 원하신다. 순전하다는 말은 흠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연단을 통해 단련이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정금같이 나아가는 것은 역경을 통해 부드러운 젖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을 먹을수 있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단단한 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아이의 때에 사람은 소화하기 쉬운 부드러운 음식만 먹었다. 조금이라도 위에 거스르는 반찬들은 부모님이 대신 씹어 내어줘서 소화하기 쉽도록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 했는가? 상상할수도 없는 조롱과 고통가운데서의 사명을 묵묵히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통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수준의 내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순전하고 온전해 진다는 것....곧 예수님의 수준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번 해의 화두는 온유이다. 불쑥불쑥 샘솟음치는 분노.....역정.....어떻게 다스릴수 있을까? 내 몸속에 감춰져 있는 죄성을 끄집어 내어 놓고 문제점으로 까발리지 않고는 나의 영성은 어린아이의 것(childish) 과 다름이 없게 된다. 그런 어린아이의 것과 같은 영성으로는 분노와 역정을 다스릴 수가 없다. 결국 매일매일의 그런 영성 훈련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도움을 준다. 온유를 나의 것으로 만들자.
말씀과 기도....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뿌리깊은 영성을 사모하는 제자의 능력이다.
당신은 왜 신이 우리로 하여금 좋은 날과 더불어 나쁜 날들을 겪도록 허락하시는지 생각해본적 있나요? 그 이유는 우리가 번영을 통해 배울수 없는 것들을 역경을 통해 배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전해지기를 원하신다. 순전하다는 말은 흠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연단을 통해 단련이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정금같이 나아가는 것은 역경을 통해 부드러운 젖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을 먹을수 있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단단한 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아이의 때에 사람은 소화하기 쉬운 부드러운 음식만 먹었다. 조금이라도 위에 거스르는 반찬들은 부모님이 대신 씹어 내어줘서 소화하기 쉽도록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 했는가? 상상할수도 없는 조롱과 고통가운데서의 사명을 묵묵히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통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수준의 내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순전하고 온전해 진다는 것....곧 예수님의 수준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번 해의 화두는 온유이다. 불쑥불쑥 샘솟음치는 분노.....역정.....어떻게 다스릴수 있을까? 내 몸속에 감춰져 있는 죄성을 끄집어 내어 놓고 문제점으로 까발리지 않고는 나의 영성은 어린아이의 것(childish) 과 다름이 없게 된다. 그런 어린아이의 것과 같은 영성으로는 분노와 역정을 다스릴 수가 없다. 결국 매일매일의 그런 영성 훈련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도움을 준다. 온유를 나의 것으로 만들자.
말씀과 기도....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뿌리깊은 영성을 사모하는 제자의 능력이다.
Thursday, February 11, 2010
입다에 관하여
◇입다 ― 신앙을 품고,역경을 딛고
무용(武勇)이 뛰어난 큰 용사
길르앗의 아들 입다는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아들이다. 즉,서자이다. 그래서 입다는 아버지의 유업을 얻지 못한 채 본처의 아들들에게 내쫓기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고향에서 쫓겨난 입다는 멀리 요단강 동쪽의 돕땅에 피신해서 살아간다. 하지만 입다는 뛰어난 용맹으로 인해 그 곳에서 잡류들의 두목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입다가 무법의 약탈자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처신을 보면 입다는 항상 일의 정사(正邪)를 생각하고 양심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인물이었다(삿 11:7∼11). 탁월한 용맹성과 더불어 입다에게 신뢰할 만한 도덕성이 있었기에 암몬 족속의 침략을 받은 길르앗의 장로들은 기꺼이 입다를 찾아가 그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를 자신들의 장관으로 세우려 했다. 이에 입다는 여호와 앞에 길르앗 장로들의 진심을 확인한 뒤 길르앗 사람들의 장관이 되어 암몬 자손과 싸워 이기고 이어 암몬과의 전투에서 자신들을 홀대했다고 시비를 걸어온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워서 이겨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그 땅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명분을 중시한 유능한 지도자
뛰어난 무용 못지않게 입다에게는 일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지도력이 있었다. 길르앗 사람들의 장관이 된 후에 입다는 최대한 명분을 중시하는 가운데 암몬 왕과의 설득력 있는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했다(삿 11:12∼28). 어처구니없는 트집을 잡아 먼저 시비를 걸어온 에브라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싸우기 전 입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일깨워주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삿 12:1∼3). 이런 명분 있는 노력이 상대방에 의해 묵살당했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싸웠고 싸워서 승리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서자라는 이유로 이복형제들에 의해 내쫓긴 후에도 입다는 무법과 탈선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그의 성품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길르앗의 장관이 되었을 때 이복형제들을 용서하는 포용력,대화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인내력,비록 경솔하긴 했어도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것은 자신의 무남독녀일지라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신앙의 결단력이 있었다. 잠시 잡류들의 두목이 되긴 했지만 입다는 늘 여호와 신앙으로 자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사사의 기회를 주셨고 마침내 입다는 역경을 딛고 이스라엘의 큰 사사가 될 수 있었다.
김영진 <성서원 회장>
무용(武勇)이 뛰어난 큰 용사
길르앗의 아들 입다는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아들이다. 즉,서자이다. 그래서 입다는 아버지의 유업을 얻지 못한 채 본처의 아들들에게 내쫓기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고향에서 쫓겨난 입다는 멀리 요단강 동쪽의 돕땅에 피신해서 살아간다. 하지만 입다는 뛰어난 용맹으로 인해 그 곳에서 잡류들의 두목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입다가 무법의 약탈자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처신을 보면 입다는 항상 일의 정사(正邪)를 생각하고 양심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인물이었다(삿 11:7∼11). 탁월한 용맹성과 더불어 입다에게 신뢰할 만한 도덕성이 있었기에 암몬 족속의 침략을 받은 길르앗의 장로들은 기꺼이 입다를 찾아가 그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를 자신들의 장관으로 세우려 했다. 이에 입다는 여호와 앞에 길르앗 장로들의 진심을 확인한 뒤 길르앗 사람들의 장관이 되어 암몬 자손과 싸워 이기고 이어 암몬과의 전투에서 자신들을 홀대했다고 시비를 걸어온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워서 이겨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그 땅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명분을 중시한 유능한 지도자
뛰어난 무용 못지않게 입다에게는 일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지도력이 있었다. 길르앗 사람들의 장관이 된 후에 입다는 최대한 명분을 중시하는 가운데 암몬 왕과의 설득력 있는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했다(삿 11:12∼28). 어처구니없는 트집을 잡아 먼저 시비를 걸어온 에브라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싸우기 전 입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일깨워주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삿 12:1∼3). 이런 명분 있는 노력이 상대방에 의해 묵살당했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싸웠고 싸워서 승리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서자라는 이유로 이복형제들에 의해 내쫓긴 후에도 입다는 무법과 탈선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그의 성품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길르앗의 장관이 되었을 때 이복형제들을 용서하는 포용력,대화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인내력,비록 경솔하긴 했어도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것은 자신의 무남독녀일지라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신앙의 결단력이 있었다. 잠시 잡류들의 두목이 되긴 했지만 입다는 늘 여호와 신앙으로 자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사사의 기회를 주셨고 마침내 입다는 역경을 딛고 이스라엘의 큰 사사가 될 수 있었다.
김영진 <성서원 회장>
Subscribe to:
Comments (Atom)